코로나 여파로 인해 극장가가 얼어붙기 시작할 무렵 근래 한국 영화중에 꽤나 괜찮게 봤던 영화가 남산의 부장들 이었다. <내부자들>의 우민호 감독과 이병헌, 이성민, 곽도원 등 연기 한가닥 하는 배우들이 총 출동한 영화에다가, 격동의 한국 현대사에서 중요한 사건에 손가락에 뽑히는 10.26사태를 주제로 영화를 만들고, 주인공이 박정희 대통령을 암살한 김재규 본인을 삼았다. 영화가 어떻게 완성되던지 간에 정치적인 중립을 지키기 어렵고 일부에서는 격렬한 비판이 쏟아질 것이라고 예상했었다. 그만큼 기대도 많이 하고 있던 작품이기도 하였다.
개봉하기 전부터 <남산의 부장들>을 두고 여러 언론사들과 정치인들이 시끌벅적한 분위기를 만들기도 하였으나 실제 영화를 보고 나서는 우려했던 정도에 비하면 많이 사그라들었다. 이것은 우민호 감독의 교묘한 연출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당시 10.26사태 이전 40일간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영화지만 어느 사건을 다루던 간에 객관적 제 3자의 시점에서 다루기보다는 이병헌(작내 김규평, 중앙정보부장. 실존인물 김재규)의 1인칭 시점으로 진행되면서 10.26사태에서 김재규의 시점에서 김재규의 내면의 갈등을 보여주고 관객들에게 공감을 얻으려는 연출을 시도하였다.
이 부분에서 10.26 사태를 다룬 김상수 감독의 <그때 그 사람들>과는 다른 기조를 보인다. 박정희 대통령이 암살된 당일에 대해 초점을 맞추고 제 3자의 관점에서 관객에게 보여주는 <그때 그 사람들>과는 다르게 <남산의 부장들>은 김재규의 박정희 암살까지의 40일간의 기간에 일어났던 일들과 김재규의 감정의 흐름을 중점에 잡고 있기 때문에 무언가 발생했던 과거의 역사적 사실을 나열하는데서 그치지 않고 한 인물의 내면의 심리와 동기에 집중하게 하여 관객의 집중을 끌어당기는 능력이 있는 영화이다.
<남산의 부장들>을 재밌게 봤고 높게 평가하는 다른 이유 중 하나는 우민호 감독의 연출이다. 우민호 감독의 전작들 <내부자들>, <마약왕> 등을 보았을 때 중립적인 관점을 지키기 보다는 감독의 연출에 따라 선과 악으로 표현되는 부분이 많았고 감정적인 격류도 절제되지 않았지만 아주 예민한 소재인 10.26사태를 다루면서는 감정적으로 최대한 절제하며, 절대적인 선과 악을 영화 내에서 설정하거나 하지 않고 오로지 김규평(이병헌, 김제규)의 내면의 심리 묘사에 공을 들인다.
김규평(이병헌, 김제규)의 내면 심리 묘사를 깊게 들어간다고 해서 당시 실존 인물들에 대한 선과 악의 절대적인 구분을 설정하지 않고 중립적으로 연출해 나간다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이였을 것인데 이걸 성공적으로 해냈다는 점에서 우민호 감독에 대해서 더 좋은 점수를 줄 수 있을 것 같다.
좌와 우 양 극단으로 나뉘어진 이념의 시대의 대한민국을 살아가면서 10.26같이 민감한 사태를 다루면서도 우민호 감독은 곡예사처럼 어느쪽으로도 치우치지 않고 줄타기를 했다고 생각한다.
<남산의 부장들>은 물론 영화이기 때문에 100% 현실의 사건만을 다큐멘터리처럼 다룰 수 도 없으며 그렇게 접근하지 않는다. 10.26사태에 대해 지금까지 알려진 여러 개의 객관적 사실들을 관객들에게 제시하고 나머지 빈 공간은 허구로 매꾸면서도 답을 제시하거나 하지 않고 마지막까지 중립적인 입장을 지킨다.
<남산의 부장들>을 필자가 재미있게 몰입하면서 볼 수 있었던 이유는 배우들의 연기력 때문이였다. 앞에서도 언급했듯 이병헌, 이서민, 곽도원등 연기 잘한다는 배우들이 정말 탄성이 나올 정도로 말 그대로 미친 연기를 선보인다. 주인공 시점인 이병헌의 내면 연기와 갈등 연기도 매우 뛰어났지만 필자는 이성민의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묘사가 매우 훌륭했다고 생각한다.
박정희 대통령의 특유의 아우라와 정치권력의 꼭대기에 있는 사람의 연기, 실존 인물과 너무 겹쳐져 보이는 표정과 말의 톤, 말투까지 정말 배우 이성민의 연기의 끝을 본 것 같다.
<남산의 부장들>, 부마항쟁, 10.26사태, 박정희, 김재규. 우리 현대사에서 제대로 청산되지 못한 역사들과 인물들이다. 나중에 시간이 오래 지나 후대 역사가들이 현대 역사를 저술하고 과거의 모든 것을 청산했을 때 어떻게 남을지는 모르지만 <남산의 부장들>은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과거 현대사의 사건들을 마무리하지 못하지만 갈무리정도는 해주고 있는 것 같다.